전 세계적으로 넷제로(Net-Zero) 달성은 ‘기후위기 대응의 종착점’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국가들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하고, 기업들 또한 ESG 경영과 탄소감축 목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목표가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기술적·정책적 기반이 얼마나 탄탄한가, 사회 전반의 시스템 변화가 따라오고 있는가에 따라 넷제로는 이상에 머물 수도,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넷제로의 개념부터 주요 도전 과제, 그리고 실현 가능성을 가르는 핵심 요소들을 6가지 주제로 나눠 살펴보고자 합니다.
넷제로의 정의와 배경 – 탄소중립이란 무엇인가?
‘넷제로(Net Zero)’란 특정 지역이나 조직, 국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총량과 흡수량을 같게 만들어 순배출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넘어, 불가피하게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하거나 상쇄하는 메커니즘까지 포함하는 통합적 접근입니다. 주로 이산화탄소를 중심으로 한 온실가스 전체의 균형을 의미하며, 기후위기 대응의 최종 목표로 전 세계가 채택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1.5도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만약 넷제로 목표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2050년 이후 기후 재난 빈도가 두 배 이상 증가하고, 농업·식량·물 자원이 심각한 위협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넷제로는 단지 환경 부문의 과제가 아니라, 에너지, 산업, 농업, 금융, 사회 전반을 재설계해야 하는 시스템 혁신 과제입니다. 미국, EU, 한국, 일본 등은 2050년, 중국은 2060년, 인도는 2070년까지의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하며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있지만, 목표와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넷제로를 향한 국가별 전략과 산업계의 대응
넷제로 달성을 위한 노력은 국가마다 기후 여건, 경제 구조, 에너지 자원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전략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대표적으로 ‘유럽 그린딜’을 통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고, 2050년까지 완전한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법제화했습니다. 이와 함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산업·농업·교통 부문 탄소세 강화, 녹색 금융 확산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21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하고, 전력·산업·건물·수송 부문에 걸친 감축 로드맵과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2023년 기준, 전체 온실가스 감축률은 목표 대비 한참 부족한 수준이며, 산업계 감축 기여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고탄소 산업의 구조 전환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기업 차원에서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ESG경영, 과학기반 감축 목표(SBTi) 등을 통해 넷제로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유니레버, 구글 등은 2030년 또는 2040년까지 전체 밸류체인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으며, 기술 개발과 공급망 개편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이나 개도국 기업은 재정·기술적 제약으로 이행이 더딘 상황입니다.
기술적 한계와 비용 문제 – 감축의 현실적 장벽
넷제로 실현의 핵심은 결국 기술과 비용에 달려 있습니다. 대표적인 감축 기술로는 탄소포집·저장(CCS/CCUS), 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 전기차, 에너지 고효율 설비 등이 있지만, 이들 기술은 상용화 속도, 비용, 인프라 구축 측면에서 여러 가지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CCS 기술은 이론상으로는 화석연료 사용 이후에도 탄소를 포집해 대기 배출을 막을 수 있지만, 현재 포집률은 70~90%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설비 설치 및 운영 비용이 매우 높습니다. 수소는 ‘궁극의 청정 에너지’로 기대받고 있으나, 대부분이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의 그레이 수소로 생산되고 있어, 진정한 탄소 감축 효과는 미비한 상태입니다.
재생에너지는 태양광·풍력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지만, 간헐성과 출력 불안정 문제로 인해 에너지 저장장치(ESS), 스마트 그리드 등 보완 기술과 함께 통합적으로 구축되어야만 안정적 에너지 체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들은 선진국에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나, 개도국이나 산업 중심 국가에서는 막대한 투자비용과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도입 속도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기업과 산업이 넷제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 비용은 생산단가 상승, 경쟁력 저하, 소비자 가격 부담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EU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기술 전환에 따른 산업별 재편은 전체 고용의 20% 이상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될 경우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사회적 합의와 정의로운 전환 – 넷제로를 위한 공동체의 역할
넷제로는 단순한 기술적 전환이 아닌, 사회 전체의 구조적 재편을 수반하는 변화입니다. 특히 산업 구조 조정으로 인한 고용 위기, 에너지 비용 상승, 지역 경제 불균형 등의 사회적 파급 효과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입니다. 이는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 없이 모두가 공정하게 참여하고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석탄 산업 종사자들의 직무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까지 약 500억 유로를 투자하며 직업 재교육, 지역 재개발, 사회보장 강화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습니다. 캐나다 역시 화석연료 종사자들을 위한 ‘녹색 일자리 전환 기금’을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100조 원 이상 규모의 ‘정의로운 전환 펀드’를 마련해 지역 간 에너지 불평등 해소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제도적 기반이 미약한 편입니다. 산업전환이 불가피한 석탄화력, 내연기관 자동차 부문 등에서 노동자 보호 및 생계 지원 정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기후전환 비용 부담도 여전히 간과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실질적 이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넷제로의 ‘윤리적 기반’이자 실현 조건입니다.
글로벌 협력과 탄소중립 외교 – 국제사회의 책임 분담
넷제로 실현은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미국, 인도 등의 대형 경제국의 역할은 물론, 개도국의 성장권 보장과 기술 이전, 재정 지원을 포함한 국제적 공조 체계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기후외교의 흐름을 보면, 여전히 이해관계의 충돌과 책임 전가가 잦고, 실질적 이행력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2021년 COP26(글래스고 기후회의)에서 선진국은 개도국에 연간 1,000억 달러의 기후기금 지원을 약속했지만, 2024년 현재까지 목표액이 완전히 달성된 적은 없습니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국가들은 탄소중립 이행보다는 생존과 경제 성장의 우선순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사회 전체의 감축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탄소국경세(CBAM)나 ESG 수출 규제는 선진국 중심의 ‘그린 보호무역’으로 비판받기도 하며, 국제무역의 새로운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은 기후 규제 강화가 곧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넷제로 전환은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책임 분담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탄소예산과 배출권의 배분, 기술 이전 협약, 국제 감축 메커니즘의 투명성 확보 등이 병행되지 않으면, 온실가스 감축이 국가 간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넷제로는 실현 가능한가 – 기대와 현실 사이
이제 질문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넷제로는 실현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정치적·사회적 실행력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실현 여부는 온실가스 감축 기술의 발전 못지않게, 각국의 정책 집행력, 산업계의 책임성, 시민사회의 참여 여부에 따라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넷제로의 패러다임을 절대적 감축에서 ‘지속 가능성 중심의 순환 시스템 구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즉, 넷제로를 단기 목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후복원력과 회복탄력성을 갖춘 사회 시스템의 장기 비전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넷제로는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하며, 이행 속도와 전략의 정합성, 국제 협력 구조, 사회적 수용성이 결합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단순한 온실가스 수치 조절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바로 넷제로의 본질일 것입니다.
넷제로는 단순히 탄소 감축을 향한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는 과정입니다. 선언은 시작에 불과하며, 그 이후에는 기술적 실현, 산업과 사회의 수용성, 정책적 일관성이 모두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 과정은 누구나 동참할 수 있어야 하며, 배제와 희생 없이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넷제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단단한 현실 인식 위에서만 실현 가능한 약속입니다.
'환경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후불안이란 무엇인가 (0) | 2025.05.27 |
---|---|
기후변화와 해양산성화 – 보이지 않는 바다의 위기 (0) | 2025.05.25 |
그린 데이터의 역설 – 친환경 기술이 초래하는 숨겨진 환경 비용 (1) | 2025.05.24 |
녹색소비의 그림자 – 에코 패러독스는 왜 반복되는가 (0) | 2025.05.24 |
플라스틱 순환경제의 진실 (0) | 2025.05.20 |
기후 회복력이란 무엇인가 (0) | 2025.05.19 |
친환경 소비의 역설: 착한 소비가 환경을 해칠 수 있는 이유 (1) | 2025.05.18 |
환경과 AI: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인공지능의 미래 전략 (0) | 2025.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