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다양한 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이오차(Biochar)'는 비교적 적은 기술 비용으로 탄소를 토양에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바이오차는 목재, 농업 폐기물, 식물성 잔재물 등을 고온에서 산소 없이 열분해해 만든 고체 탄소물질로, 토양 개량 효과는 물론 탄소 저감 효과까지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자연 기반 해법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바이오차가 왜 주목받고 있는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농업과 환경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기술적·정책적 한계는 무엇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이오차란 무엇인가 – 탄소를 잠그는 검은 열쇠
바이오차(Biochar)는 식물성 바이오매스를 고온에서 산소가 거의 없는 상태로 열분해(thermochemical pyrolysis) 하여 만든 고형 탄소 물질입니다. 이때 생성되는 바이오차는 일반 숯처럼 보이지만, 그 구조는 고도로 다공성이며 안정적인 탄소 결합을 이루고 있어 토양에 매립 시 수백 년 이상 분해되지 않고 탄소를 고정할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바이오차는 자연 순환 속에서 배출될 이산화탄소를 장기적으로 격리할 수 있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네거티브 에미션 기술(Negative Emission Technology)’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UN IPCC는 바이오차를 활용한 토양 탄소 격리를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 기술 옵션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바이오차는 생산 과정에서 바이오오일, 합성가스(syngas) 등도 함께 생성되기 때문에, 자원순환과 에너지 회수라는 이중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폐기물 처리 수단을 넘어서, 바이오차는 농업, 산림, 환경정책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다기능적 기후 솔루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토양 속 바이오차의 역할 – 저장을 넘는 환경적 가치
바이오차가 토양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탄소 저장을 넘어, 토양 물리·화학적 특성을 다층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이오차는 높은 다공성과 표면적을 가지고 있어 토양의 수분 보유 능력을 증가시키고, 통기성을 개선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특히 가뭄 빈도가 높아진 기후변화 시대에 기후적응형 농업 기술로서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바이오차는 양이온 교환능(CEC)을 높여, 비료 성분을 효과적으로 붙잡고 식물에게 천천히 방출함으로써 비료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작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비료 유출에 의한 수질오염을 줄이는 이점도 가져옵니다. 동시에, 바이오차는 토양 내 유익 미생물의 서식처가 되어 토양 생물 다양성을 높이고, 작물의 병해충 저항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호주, 일본 등에서는 유기농 인증 농가를 중심으로 바이오차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바이오차를 활용한 지속가능 농법이 탄소크레딧 확보 수단으로 연계되고 있는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바이오차는 토양의 pH를 중화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산성화된 농지 복원에도 효과적입니다.
바이오차의 생산 방식과 지속 가능성
바이오차는 건조한 상태의 유기성 폐자원을 300~700℃의 고온에서 무산소 또는 저산소 상태로 열분해하여 생산됩니다. 이 과정에서 주어진 온도와 시간, 원료의 종류에 따라 바이오차의 특성과 품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목적에 맞는 기술 설계가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고효율 소형 열분해기부터 산업용 연속식 플랜트까지 다양한 형태로 상용화가 진행 중이며, 에너지 자립형 농업 시설과의 연계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원료는 식물성 농업 폐기물(볏짚, 옥수수대), 산림 부산물, 음식물 쓰레기, 하수 슬러지까지 다양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바이오매스 자원을 수확이 아닌 '잔재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속 가능성의 원칙입니다. 즉, 바이오차 수요가 높아진다고 해서 이를 위해 일부러 숲을 베어내거나 식량 작물을 원료로 전환하는 방식은 환경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한 열분해 과정 중 발생하는 부생가스와 열에너지를 회수해 난방, 전력 생산에 사용하는 시스템은 전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러한 열병합(co-generation) 방식의 설계는 바이오차 산업의 경제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이오차의 활용 확대와 정책적 뒷받침
바이오차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널리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진보뿐 아니라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입니다. 현재까지는 일부 선진국 중심으로 바이오차 활용이 확대되고 있지만, 보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정부의 보조금, 기술 지원, 인증 제도 등 다각적인 정책 프레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바이오차를 농업 환경 보전형 기술로 인정하고, 관련 보조금 제도와 탄소배출권 시장 연계를 준비 중입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바이오차에 대한 농진청의 실증 연구와 지자체 중심의 시범사업이 일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인 확산 단계는 아닙니다. 특히 바이오차를 활용해 탄소를 저장하고 감축량을 인증받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탄소배출 감축 메커니즘'에 바이오차를 포함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합니다. 이는 농업부문에서도 탄소중립 실현을 가능케 하는 핵심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바이오차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술 스타트업과 농가, 지자체, 민간기업 간의 협업 구조가 필요합니다. 바이오차 생산-활용-유통-인증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 바이오차는 진정한 녹색 전환의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바이오차의 한계와 미래 과제
바이오차는 다방면에서 기대를 모으는 기후 솔루션이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가 존재합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부분은 생산 비용 대비 수익성입니다. 특히 대규모 농업 외 지역에서는 바이오차 생산 시설 설치와 유지에 드는 초기 투자 비용과 연료비, 인력 운용비가 적지 않기 때문에, 시장 기반으로만 확산을 기대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바이오차의 탄소 저장 효과에 대한 정량적 검증이 아직 일관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다양한 원료와 생산 조건에 따라 바이오차의 탄소 고정 능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표준화된 측정 및 인증 방식으로 통합하는 것이 향후 탄소시장과 연계되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입니다.
무분별한 생산과 활용도 경계 대상입니다. 바이오매스를 대량 확보하기 위해 산림을 훼손하거나, 생태계 균형을 해치는 방식으로 자원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이오차 확산은 기후 과학, 생태 보전, 에너지 기술, 농업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협업과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이오차는 탄소를 토양에 가두고, 농업을 회복시키며,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기후 솔루션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가능성만큼 제도적 기반과 과학적 검증도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국가적 비전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입니다. 앞으로 바이오차가 농업·환경·에너지·탄소시장을 아우르는 통합적 자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우리는 토양 위에 묻은 숯으로 지구의 미래를 지켜내는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후 회복력이란 무엇인가 (0) | 2025.05.19 |
---|---|
친환경 소비의 역설: 착한 소비가 환경을 해칠 수 있는 이유 (1) | 2025.05.18 |
환경과 AI: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인공지능의 미래 전략 (0) | 2025.05.17 |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이란? (0) | 2025.05.16 |
데이터 센터의 환경 발자국 (0) | 2025.05.14 |
리튬 전쟁 – 배터리 원자재와 환경 갈등 (0) | 2025.05.13 |
블루카본이란 무엇인가 (0) | 2025.05.13 |
기후기술 스타트업이란 무엇인가? (0) | 2025.05.11 |